LDR035 : 왜 이 세상은 그러한가?

여러분들은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부정과 재난을 볼 때,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다 하겠는가요?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허락하지 않으시겠지 !  이것이 불가지론과 무신론의 유명한 논제인 것입니다. “고통의 문제”로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과 자유를 주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우리들이 이 세상을 나쁜 길로 인도하고 악용하여 하나님 없는 세상으로 뒤집어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들은 “만약 하나님께서 진실로 우리들을 유의하신다면 우리들을 저지시켰으리.”라고 대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무척이나 유의하셔서 우리들을 “채찍과 당근” 즉 처벌과 보상으로 통제될 수 있는 한 패거리의 기계적 인간으로 바꾸어 놓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외부적 자극이나 상벌에 반응하는 조건반사 실험결과 같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어떨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그와 관련이 있어 그와의 교제를 향유할 수 있는 참된 사람들을 원하신다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알 수 있게 되고 또한 그와 떨어져 있는 양자택일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세상이 그토록 선과 악의 혼합물인 하나의 이유인 것이지요. 우리들은 우리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발전시킬 사명을 떠맡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안에 창조되었고 그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때에 뒤따르는 무가치한 세상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고집의 모든 치명적인 결과를 능히 참고 견디실 수가 있으며 그의 아들 안에서 우리들 자신의 삶과 세상을 조정하사 마침내는 우리들이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비젼을 묵묵히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화와 조정 즉, 죽음과 부활은 태양계에서 국부적으로 잇따라 연속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으로 통하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부수적으로 연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도록 이러한 여러 가지 저항력을 표현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자유 의지를 이용해 역사하십니다.

미래를 알지만 현재 고통을 겪는다는 이 힘든 개념은 아인슈타인이 우리들로 하여금 존재하지 않는 별들을 종종 찾아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었을 때 더 이해하기 쉽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대기권 밖의 우주에서 보다도 우리들의 공간에서 더 느리게 지나간다는 가능성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하나님에게는 천 년이 하루 같다”라는 말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게 되고 또 우리들은 단지 오늘만 보는데 하나님은 내일도 보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의 무한한 지력이 오늘 날 우리들의 상태와 백 만년 후의 되어 있을 상태를 아신다면 또한 우리들의 모든 중간 상태도 틀림없이 존재하겠지요. 우리들의 현재의 삶은 싸워 이기려는 각자의 노력을 버리는 대신에 자발적으로 묵묵히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들은 “고심하여 자기 영혼의 구제를 이루라”고 하는 지령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선하신 기쁨을 위하여 결심하시고 역사하시기 위하여 여러분들 안에서 작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실체에 있어 두 가지 영역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마치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좀처럼 요구하지 않는 어떤 존재인 것처럼 작용하는 모든 다양한 효과와 결과를 수반하는 현실적인 영역이 또 하나의 영역은 완전히 개조되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루 하루 여러분들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는 그런 영역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양자물리학을 읽기 전까지는 매우 신비적이며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오늘 날의 물리학자들은 어떤 동일한 조건으로 참된 현실에 관하여 논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세계를 조성하는 가장 작은 분자에 관한 그들의 연구가 특별한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합니다. 아인슈타인이 그의 일반적인 상대성 이론을 결론짓고 있을 때 어떤 양자나 혹은 원자보다 작은 분자가 나타나 그들이 아주 먼 거리에 분리되어 있을지라도 서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 상대성 이론에서 그는 시간이란 공간의 위치에 따라서 다르다는 사실을 제시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말하였듯이 이 기묘한 “어떤 거리를 두고 일어나는 유령 같은 일”을 설명하려다 우리들의 세계에는 병행하는 두 세계가 있다는 생각에 끌리게 되었습니다. 과학으로나 신앙으로나 서로의 병행하는 세계에 관하여 아무것도 입증된 것은 없지만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 영역에 관한 관념은 더 이상 한 전지하시는 지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특별 주석….  이 세상은 우리들이 선택한 나무입니다. 그 나무는 우리 들에게 두 가지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 없는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