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036 : 양자 물리학과 병행 세계

이해하기에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신정론(神正論)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예견하시고 미리 운명을 정해 놓으신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것들의 잠재력을 틀림없이 알고 계시고, 따라서 틀림없이 모든 새, 모든 양성자 그리고 모든 인간 하나 하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상세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느 피조물이 주님의 뜻을 거역할 자유를 가지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문제를 제시해 줍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 이외의 무가치한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예속자를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있어서는 아니될 무가치한 일을 선택하려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하나님 자신의 사랑과 부합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것 대신에 최선을 원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거나 아니면 증오하기로 마음 먹을 수 있는 자유 의지의 주체를 만들어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는 문제입니다.

이제 양자 물리학자들은 50여 년 동안이나 우리들의 우주를 조성하는 가장 작은 분자들의 반응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들은 중성자 또는 쿼크와 같은 원자보다 작은 분자들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한 수 없이 많은 이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관찰한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작용 중의 하나는 한 전자의 회전이 십조 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다른 전자의 반응에 미치는 외관상의 영향인 것입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서로를 인식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어떤 거리를 두고 일어나는 유령 같은 작용”이라 칭하였으며 이 우주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였습니다. 그 이래 벨(Bell)과 같은 물리학자들이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였고 여러 해 동안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상대성 이론과 부응시키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점차적으로 물리학자들은 병행하는 세계가 있다고 하는 이론을 긍정적으로 가정한 에버레트(Everett)라고 하는 미국 물리학자의 이론을 떠받들게 되었습니다. 그 병행하는 세계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순간 순간 선택을 하는 일만큼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옛날 아담과 새로운 아담을 창조하셨다고 말할 때 신앙이 이성과 매우 양립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옛날 아담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주적으로 무가치한 일을 포용하고, 새로운 아담은 하나님을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으로 포용합니다. 우리들이 이것 아니면 저것을 묵묵히 따르듯이 이 세상의 삶과 천상의 삶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게 전지(全知)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아시고 그 모든 것을 우리들 각자를 위한 성실한 사랑으로 다스리십니다.

점차적으로 과학계와 신앙계의 융합이 증진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물리학자들이 수 백만 광년의 거리에 서로 떨어져 있는 원자에 대한 동시적 영향을 설명하려 병행하는 세계에 관한 관념에 하기 위하여 두 세계에 관한 관념에 빠져있듯이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의 동시적 반응을 설명하기 위하여 두 세계에 관한 관념에 빠져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 139편에서 말하였듯이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단지 우리들의 자유 의지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적인 자세가 그가 전능하다 하여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처소 즉,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처소”를 우리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 시공의 4차원 세계에 살면서 우리가 그 처소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자주심으로 모양 없게 고쳐진 개성 속에서 살 것인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일시적인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한 쪽으로는 악화되어가는 폭력, 야수적인 무관심, 그리고 파괴적인 탐욕의 모든 공포 속에서 하나님 없는 삶을 보게 되며, 또 다른 쪽으로는 이타심과 친절한 처신과 격려의 말로 삶을 참아나갈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존재하는 영원 세계에서 비치는 여러 줄기의 광명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우리들은 선악에 관한 우리들 스스로의 지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 속을 흐르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자유권 행사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단 한 가지 진실과 한 분의 창조주가 계실 뿐인데 그는 순식간에 모든 시간을 보시지만 우리가 우리 각자를 위한 그의 계획을 묵묵히 따를 때 까지 그의 세계가 비틀어져 있음을 끈질기게 참고 기다리시는 겁니다.